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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경북 이야기보따리 수기 공모전] 삶에 지쳐 힘든 마음, 가뿐히 비워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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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재 작성일21-08-17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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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희씨[경북신문=장성재기자] [금상] 청도를 걷다-박성희 
  살다보면 몸이 물먹은 솜이 되거나 마음이 체하는 날도 있기 마련이다. 별 무리 없이 살았던 우리 가족들에게도 먹장구름이 몰려오는 일이 생겼다. 남편이 덜컥 전립선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아파하고 슬퍼할 겨를마저 없었다.
   불에 덴 사람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수술을 해주겠다는 병원을 찾아 헤맸다. 다행히 젊고 당찬 의사가 힘들지만 시도해보겠다고 나섰다.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일만 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는 암 환자가 되었다.
   많은 이들의 기도 덕분인지 수술은 잘 끝났다. 다만 일상생활이 가능한 선에서 암세포를 제거했기 때문에 언제든지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 수 있는 암세포를 평생 친구로 여기며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우리 가족들은 네 개의 바퀴 중에 하나라도 삐걱거리면 수레가 온전히 굴러갈 수 없다는 것을 비로소 몸으로 느꼈다.
   또한 삶의 애환이 묻어 너덜너덜해진 바퀴일지언정 정성껏 매만지며 살아갈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했다. 인생은 직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턴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으며 천천히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힘겨운 일을 겪고 나니 훌쩍 잿빛도시를 떠나보고 싶었다. 아이들과 시간을 맞춰 지인이 추천해 준 청도로 향했다. 차창 밖 풍경들과 눈맞추다보니 어느새 사열하듯 늘어선 감나무들이 코앞에 있었다. 마침 가을이라 가지마다 주황색 등이 켜진 듯 온 동네가 환했다.
   감식초 한 병을 사서 생수에 섞어 후루룩 마시니 몸과 마음이 헹궈지는 기분이었다. 또 감을 썰어 볕에 잘 말린 청도 감 말랭이는 한 번 맛본 사람이면 달고 쫀득한 그 맛에 반하고 만다. 먹을거리가 지천으로 넘쳐나는 때이지만 사람과 자연이 함께 빚어낸 맛은 혀와 가슴이 먼저 안다. 이젠 제법 어른 티가 나는 아이들도 좋아해 한 봉지를 샀다.
   청도는 요술단지 같은 곳이다. 곳곳에 색다른 볼거리와 먹을거리, 체험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여간 아니다.
   옛 경부선 열차터널을 정비하여 만든 와인터널은 여름의 무더위를 날리기엔 안성맞춤이다. 감의 즙으로 만든 와인이 익어가는 모습도 볼 수 있고, 시음도 가능하다. 또 멋지게 꾸며진 사진 촬영지를 지나면 다녀간 이들이 걸어놓은 소망의 편지가 꿈처럼 매달려 있다. 우리 가족들도 각자의 바람을 적어 걸며 일 년 후에 와서 그대로 있는지 확인해보자며 마주보고 웃었다. 아마 모두가 남편의 건강을 적었지 싶다.
   등이 서늘한 와인터널을 빠져나오자 뜨끈한 게 생각났다. 청도 용암온천으로 차를 몰았다. 각종 질병에도 효험이 있는 천연 광천수라며 남편이 좋아했다. 갖가지 스파로 몸이 노곤노곤해져 노천탕으로 나가보았다. 때마침 불어오는 선들바람에 몸을 식히며 흘러나오는 치유음악에 몸을 맡겼다. 뜨겁고 서늘한 기운을 동시에 받으니 심신이 말갛게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내친김에 입소문 난 청도추어탕으로 출출한 배를 채우기로 했다. 미꾸라지와 유천에서 건져 올린 잡어를 갈아 넣고 소채와 함께 푹 끓여낸 추어탕 한 그릇에 땀이 확 솟는다. 비린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큰아이도 구수하다며 숟가락을 연신 비웠다. 용암온천을 끼고 있는 프로방스 테마파크로 발길을 옮겼다.
   그냥 밋밋했던 동산이 해가 이울자 딴 세상으로 변했다. 사방에서 빛이 내리는 듯 눈이 부셨다. 오색 불꽃이 내뿜는 신비한 마력에 사람과 숲이 함께 깨어나 환상의 도가니가 되었다. 어른들은 동심으로 돌아가 추억에 젖어들고, 아이들은 제 세상인양 풍선처럼 들떠 팔랑거렸다. 남편도 분위기에 휩쓸려 함박꽃처럼 웃으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다음날 고풍스런 청도읍성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석벽 위를 걸으며 저리 단단한 돌을 쌓아올려 바깥세상의 풍파로부터 지켜내고자 한 것이 평화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쩌면 그것은 어떤 어려움이 와도 서로 부둥켜안고 가야할 가족들의 운명과 닮아 있는 듯 했다. 제각각의 모양을 지닌 돌덩이들이 세월의 빛깔로 채색되어 견고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많이 소실되었다가 고증을 통해 복원 중에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깃발이 휘날리는 성루에 서니 군사들의 함성이 들리는듯해 가슴이 벅차올랐다. 성 밖도 아담하고 예쁘게 꾸며놓아 눈이 호사를 누리는 느낌이었다. 한갓진 샛길을 쉬엄쉬엄 걷다보니 수북이 쌓여있던 삶의 티끌들이 바람에 날아가는 듯 했다. 그 옛날, 이 곳이 이서국의 도읍지라고 생각하니 흙 한줌, 돌 하나도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지친 다리를 이끌고 읍성과 이어진 한옥 카페로 들어서니 울창한 나무와 갖가지 꽃들이 반겨 맞는다. 옛날식 팥빙수에 감 말랭이 고명이 얹혀 입맛을 끌어당긴다. 대청마루에 올라 다리를 뻗고 앉아있자니 몸과 맘이 저절로 풀어진다. 열어젖힌 문으로 푸른 하늘이 들여다보고, 바람까지 슬몃 불어주니 별천지가 따로 없다.
   늘 동동거리며 달려왔던 스스로를 다독여주고 싶었다. 나를 위한 성찬이라 여기며 따뜻한 오미자차 한 잔을 천천히 음미하며 마셨다. 행복감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어딜 가나 발 담그기를 좋아하는 가족들이 유천 내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제법 찬 기운이 돌았지만 훌훌 겉옷을 벗고 그늘이 깊은 다리 밑에 짐을 풀었다.
   아이들은 벌써 물로 뛰어들어 돌을 들춰내며 다슬기를 잡느라 야단이었다. 공사로 물이 줄어 수확은 한줌에 불과했지만 그러면 어떤가. 아직 맨발로 찰방댈 수 있는 냇물이 남아있으니 감사하지 아니한가. 꼬물거리는 다슬기들은 다시 제집으로 돌려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이렇게 살아내느라 수고한 내게 선물을 주고 싶을 때 훌쩍 떠나기 좋은 곳이 청도다. 사방에서 오기 편리한 교통의 요지이면서 전통과 현대가 함께 숨 쉬는 유서 깊은 곳이다.
   그뿐인가. 한 나라의 도읍지가 될 만큼 천혜의 조건을 갖춘 땅이면서 열정적인 소싸움으로도 유명한, 땀내 물씬 나는 고장이기도 하다. 이처럼 다양한 얼굴의 청도가 참 매력적이다.다음엔 문향이 가득한 이호우, 이영도 시조시인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생각이다. 청도에 와서 어느 한 곳만을 보고 간다면 코끼리 다리만을 만져보는 격이 된다. 읍성 뒤의 남산 계곡도 올라보고, 성루에 서서 깃발도 한 번 올려다 볼일이다.
   또 발길 닿는 대로 걷다보면 예술의 향기와 함께 유혹하듯 화르르 피어나는 꽃들도 만나고, 잔챙이 물고기가 무리지어 노니는 내도 만날 수 있어 반갑다.산과 물과 어진 사람들이 모여 일군 축복의 땅, 맘이 통하는 이들과 무람없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터벅터벅 걸어보기 좋은 푸른 곳이다.이제 다시 우리들의 도시로 걸어 들어간다. 이틀 동안 개운하게 비워낸 마음의 무게가 가뿐하다. 
 
  [수상소감] 박성희 씨 "가족 울타리의 소중함을 깊이 새겨… 단단히 손잡고 함께 할 것" 
  소금쟁이 맴돌 듯 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지쳐가고 있을 때 날아든 소식에 눈이 조금 커졌습니다. 꽃송이들과 눈을 맞추거나 솔바람을 맞으러 뒷길을 서성이는 게 일상의 대부분이었거든요. 가끔 식탁에 앉아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리거나 연필을 쥐고 앉아 마음을 끌어내 보기도 했지요.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주변 이야기들을 원고지에 슬며시 풀어놓는 일들이 마냥 행복했습니다. 매미들의 떼창에 잠을 깨고, 뻐꾸기의 한가로운 울음에 시름을 달래는 것만큼 좋았습니다. 때로는 나풀거리는 모들이 잔디처럼 펼쳐진 논이며, 개망초꽃 물결이 넘실거리는 묵정밭을 만날 수 있는 도시의 뒤안길에 둥지를 틀 수 있어서 감사하지요.
   얼마 전 산책길에 나섰다가 비마중 나온 두꺼비를 만났습니다. 얼마만의 조우인가 싶어 신기하게 바라보았지요. 그 덕일까요. 기쁜 소식에 오늘은 제 귀가 모처럼 호사를 누립니다. 가족의 울타리가 얼마나 질긴 것인지, 그 소중함을 더 깊이 새기게 된 요즈음입니다.
    앞으로도 가족들과 천천히 걸어가겠습니다. 때로는 삶의 여정이 쉽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단단히 손잡고 함께 가려합니다.
   또 우리가 남긴 발자취들을 소소하게 원고지에 담아 볼 생각입니다. 저절로 돋아나 뜰을 채운 채송화와 더 오래 눈 맞추며 살겠습니다. 가슴 속에 고인 글샘에  더 자주 두레박을 내려 보겠습니다. 그 길에 따뜻한 손 내밀어 주신 길손 같은 경북신문에  감사드립니다.
장성재   blowpa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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