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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석(昔)씨 왕들의 이야기] 제26화 왜인이 대장군 석우로를 처참하게 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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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씨대종회 원로회장 석진환 작성일20-06-2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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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신문=석씨대종회 원로회장 석진환] 서불한(舒弗邯) 석우로는 신라 삼성(三姓)의 하나인 석씨(昔氏) 왕실의 지근한 친족으로 몸이 금지옥엽과 같으면서도 용맹이 뛰어난 맹장(猛將)이었다. 여러 차례 왜놈들이 몰려와서 도둑질을 해가며 신라왕실을 괴롭힐 때마다 석우로는 자진해서 왜놈들을 쥐잡듯이 색출하여 신라왕실을 지켜오곤 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왜놈들은 간간히 잊을 만하면 또 와서 성가시게 하고 어떤 때는 임금님의 친필을 가진 사신(使臣)이 와서 왜왕의 빈첩(嬪妾 : 임금님의 첩)을 요구하든지 아니면 며느리감을 구해달라고 신청하였고, 때로는 기와공, 방직공 같은 기술자들을 구걸하러 와서 아주 귀찮게 하였다.

  이번에도 갈라고(葛那古)라고 하는 사신이 와서 신라의 객관(客館)에 머물면서 석첨해왕(占解王)에게 갖가지 요청을 하는 등으로 온갖 투정을 다 부리고 있었다. 석첨해왕은 골치가 아파서 아예 정전(政殿)에 나시는 것까지도 잊고 머리를 싸매고 내전에 있었다. 심정을 눈치챈 석우로가 임금님께 나아가 말했다.
 
  "상감님께서 몸소 왜사를 만나시지 않더라도 신이 객관에 나아가 요구사항을 알아보고 그것이 이치에 맞지 아니하면 혼짝을 내서 보내겠습니다" 임금님은 오히려 다행한 일이라 생각하고 "그럼 경의 의사대로 선처해 보오"하고 허락하셨다. 석우로는 의기당당하게 집으로 가서 그의 부인의 품에서 놀고 있는 아들 석흘해(訖解)를 데리고 객관으로 갔다. 아들 흘해를 데리고 간 이유는 아버지의 위풍이 얼마나 당당하며, 까무잡잡하고 북슬 털이 나 있는 왜놈들이 얼마나 못났는가 하는 것을 직접 비교하여 보여주기 위해서다.

                        석우로는 객관에 들어서자마자 의자에 앉아 있는 왜사(倭使 : 왜국 사신)에게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물었다."어찌해서 오셨소?", "임금님의 며느리감을 구하기 위해 왔습니다", "도대체 왜왕은 아들이 몇 명이나 되기에 그렇게 자주 며느리감을 구합니까?", "우리나라 왕자님은 한 20여명 됩니다", "한 배에 몇 명씩이나 낳기에 그렇게 많습니까?"
 
  이렇게 말을 하고 보니 석우로의 말투는 왜국의 왕비를 완전히 짐승 취급을 한 꼴이 되고 말았다. 갈라고의 마음에서 불길이 솟았다. 허나 만리타국에서 화를 낸다고 해서 그러 쉽게 해결될 일도 아니다. 꿀꺽꿀꺽 침을 삼키며 억지로 참아가면서 말을 이었다.
 
  "그게 아니오. 신라의 여자들은 부지런하고 일을 지성껏 잘하기 때문에 일을 시키려고 얻어가려 하는 것이오", "아-니, 그럼 종래 우리 여자들을 데려다가 왜국의 종으로 부려먹고 있다는 말이요. 그런 배짱이라면 신라의 공주는 그만 두고라도 암캐 한 마리도 왜국의 왕비로 줄 수가 없는걸, 진실로 일이 그렇다면 왜왕을 붙들어다가 신라의 소금 굽는 종으로 삼고 왕비는 데려다가 부엌데기로 만들어야겠는걸…"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原文 : 與客戱言(여객희언) : 손님과 희롱하여 말하기를, 早晩以汝王爲鹽奴(조만이여왕위염노) : "조만간에 너희 왕을 소금 만드는 노예(鹽奴)로 만들고", 王妃爲爨婦(왕비위찬부) : "왕비는 반찬이나 만드는 부엌데기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어서 돌아가서 석우로가 그렇게 말하더라고 당신의 임금님께 고하시오"하고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 와버렸다.

  창피를 당해 화가 난 왜사는 이를 악물고 길을 떠났다. 석우로의 부인 명원은 이 이야기를 듣고 통쾌해하기 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인과(因果)는 자명한 것인데, 그래도 내 집을 찾아온 손님에게 너무 지나친 말을 하였다고 생각하며 걱정했다. 그러나 결과는 석우로의 생각과는 달랐다. 화가 난 왜사는 본국으로 돌아가자 마자 이 사실을 임금님께 알리고 우도주군(于道朱君)이라는 하늘장수와 만 여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신라의 서울을 쳐들어 왔다. 당황한 신라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고 상감께서도 걱정을 태산같이 하였다.
 
  역시 석우로가 나아가서 말했다. "상감, 이번 일은 신에게 책임이 있으니 조용히 유촌(柳村)으로 나가 계시면 신이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어떻게 처리한단 말이오?", "우도주군을 달래 보겠습니다", "큰일 날 소리, 살기등등한 왜인에게 단신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기름을 지고 불에 들어가는 것과 같소이다", "그래도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하고, 그는 또 집으로 와서 전과 같이 하인들에게 흘해를 업히고 길을 떠났다. 왜장의 막사에 다달아서 하인들과 흘해에게 일렀다. "내 곧 다녀올 터이니 여기 있거라", "예, 빨리 다녀오십시오"

                        이렇게 적군의 진지에 들어간 석우로는 저녁때가 되어도 돌아 나오지를 않았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한 하인들은 그냥 그대로 돌아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왜막에 들어간 우로가 겸연쩍게 왜장에게 인사하고,"농담으로 주고 받은 이야기인데 뭘 그렇게 노하여 병사들까지 이끌고 오셨소"하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많은 군사들이 "와-!"하고 몰려와 그를 그물로 포박한 후 자기네 병영으로 끌고가서 마당 가운데 세워놓은 기둥에 묶은 뒤 머리에서부터 전신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므로 처참하게도 산 사람을 생화장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원수를 갚았으므로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이튿날 석우로의 종들이 그곳에 갔을 때는 타다 남은 재 가운데 뼈대하나 찾기 어려울 정도로 깡그리 타버렸다. 이 소리를 들은 명원부인은 예측한 대로라 생각하며 하늘을 보고 절치부심(切齒腐心 : 분을 못 이겨 이를 갈고 속을 썩임)하면서 복수를 결심 한다.
석씨대종회 원로회장 석진환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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